국선 사건의 보람, 변호사의 숙명

저는 개업해서 개인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지만, 버지니아 페어팩스(Fairfax)와 알링턴(Arlington) 카운티에 국선 변호사(court-appointed counsel)로 등록이 되어 있어서 국선 사건을 대리하기도 합니다. 사건마다 다르지만 대개 국선 사건이 사선 사건보다 손이 많이 가고,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변호사를 선임할 여력이 없는 소외계층을 주로 대리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선 사건들 같은 경우는 수임 단계에서 의뢰인과 변호사 간의 밀당(?)을 거쳐 서로 합의에 이르고, 수임료가 있기 때문에 대리가 시작될 시점에 이미 변호사와 의뢰인 간의 신뢰가 어느 정도 쌓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국선은 변호사도 의뢰인도 법원이 서로 강제적으로 맺어준(?) 사이라서 상대가 누구인지 미리 알 겨를이 없이 대리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제가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큰 보람을 느끼는 경우는 사선보다 국선 사건들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만큼 좌절을 많이 느끼는 사건들도 국선 사건인 경우가 많습니다. 종종 사선 사건의 1/10도 안 되는 국선 수임료(주 정부에서 지급)를 받으면서, 사선보다 노력과 시간이 배가 소요되는 사건을 하고 진행하고 있노라면, 국선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죠.


그런데 최근에 제가 도와준 국선 의뢰인이 말이 그런 마음을 접게 만들었죠. 무엇이었냐 하면, 


"내 사건을 무료로 도와줘서 고맙다. 참, 그리고 내가 마침 기소된 다른 사건이 있는데, 여기(구치소) 나가면 취직해서 그 사건에는 당신을 사선으로 고용하고 싶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전까지 이 의뢰인은 워낙 요구 사항도 많고 변호사 말은 잘 안 듣는 편이라 좀 고생했었는데, 이 말을 들으니 그래도 저를 믿어주고 제가 노력한 것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죠. (사실 기존 의뢰인이 본인의 새 사건을 의뢰해주면, 저야 좋긴 한데 한편으론 의뢰인한테 새 기소가 생겨서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안타까움이 공존합니다) 물론 실제로 그 의뢰인이 저에게 연락할지 안 할지는 모릅니다. 그냥 하는 말일 수도 있죠. 그래도 기분이 좋은 것만은 어쩔 수 없더군요.


그 외에 예전에 갓 성인이 된, 아직 볼에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어린 의뢰인을 국선으로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그분의 어머님이 저를 기억해 주시고 연락해주셔서 자녀의 새로운 기소(ㅠㅠ)를 방어해 달라고 해서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안타까운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 기소를 당한 의뢰인이 있어야만 먹고살 수 있는 형사 변호사의 어쩔 수 없는 숙명인 것 같습니다.


글: 김정균 변호사 (버지니아/DC/뉴욕 주 변호사)

22 views